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 최정란 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 최정란 팝니다. 권리금 없습니다. 시설비 조금 인정하시면 바로 드립니다. 보수유지비가 만만찮을 것이라구요. 철거비가 더 들거라구요. 솔직히 동의합니다. 분해효소가 없어 소주 한 잔 이상 안 받고 이래저래 속 끓이는 날 많았으니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도 몇 군데 손..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30
재테크 / 안도현 재테크 /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9
여행가방 / 박서영 여행가방 / 박서영 지퍼의 개화(開花), 그건 낡은 가죽가방을 열어 걸어온 길을 쏟아내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방 폭설이 내리는 가방 꽃 사태가 일어나는 가방 그건 파문을 모아두는 일이었는데 쏟아내 보니 그랬다 떠나온 풍경은 죄다 어딘가 아파 보였다 모아 두는 게 아니었는데, 지웠어야 했..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9
오도재를 넘어간 문학기행 2. 바위보다 먼저 반기는 담쟁이덩굴. 서암정사 초입. 굴법당 가는길. 절집은 너무 고요해 빈 집 처럼 느껴진다. 굴법당 문. 내부. 전부 뭔가 새겨져 있다. 많은 부처상이 얼굴은 다 다르다. 범종각 멀리 추성리가 보인다. 오죽이다. 오죽 포크 만들어 이웃에 논아 드리고 싶다. 곱게 물든 이 밑에서 잠시 교.. 文學의 오솔길/문학기행 2008.10.29
오도재를 넘어간 문학기행(10월28일) 1.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며칠 전 이였다. 스산한 바람에 낙엽비가 떨어지는 날, 노 교수님을 모시고 문우와 함께 지리산의 산그늘에 하루를 맡겼다. 함양 상림숲에 있는 옛 학자의 흉상과 연대기가 있는 곳이다. 역대 천령(현,함양)태수들의 공덕비가 있다.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비석은 조병갑.. 文學의 오솔길/문학기행 2008.10.29
천개의 손 / 최금진 천 개의 손 / 최금진 울고 싶고, 누구도 용서하기 싫고, 높은 데 올라서면 뛰어내리고 싶고, 차를 보면 달려들고 싶다고 빌딩숲에 내리는 눈발을 보며 당신은 말했다 사람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우울한 당신의 목에 밧줄을 걸어주는 것은 안락사일까 아닐까 차라리 같이 죽자고 ..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8
흰곰 / 김영식 흰곰 / 김영식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북극에 산다는 흰곰의 허기진 울음 같은, 냉기 자욱한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러나 백야의 툰드라 속으로 순록들이 눈썰매를 끌고 가거나 레밍을 움켜쥔 흰올빼미만 날아오를 뿐, 곰이 살고 있으리라는 짐작은 진즉부터 했었지만 고등어와 쇠..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7
코스모스 / 송찬호 코스모스 / 송찬호 지난 팔월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와 코스모스 가을 신상품을 소개하고 돌아갔다 여전히 가늘고 긴 꽃대와 석청 냄새가 나는 꽃은 밀교에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헌데 나는 모가지가 가는 꽃에 대해서는 오래 바라보다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 얹어두는 버릇이 있다 코스모스가 꼭 ..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7
그녀라는 커다란 숨구멍, 혹은 시선의 감옥 / 강정 그녀라는 커다란 숨구멍, 혹은 시선의 감옥 강정 1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선 그녀의 일부를 내 안에 결박해야 한다 만 명의 남자가 입을 댔던 그녀 유방 앞에서 만 명 중의 하나가 되는 일은 만 명의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그녀라는 허구의 몸통 안에서 온몸을 친친 감고 나는 그녀의 바깥이 세..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5
고등어 좌판 / 김종미 고등어 좌판 / 김종미 구울 거요? 지질 거요? 내려칠 칼을 든 여자와 좌판의 고등어가 두 눈 빤히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염라대왕이 이런 기분일까 네 영혼을 지글지글 구워주랴? 아니면 얼큰하게 지져서 이 지옥을 기름지게 할까 그러고 보니 내 몸이 지옥이다 이 지옥 속에 감금된 영혼을 극락에 풀어..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