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앉다 / 손현숙 눌러앉다 / 손현숙 이사를 결정한 후 그의 고민은 산수유 한 그루였다 30년 수유리를 몸에 담아 가지와 줄기를 말없이 키웠을, 말하자면 여기서 시 쓰고 새끼 키우고 세상과 맞서면서 그는 늙고 나무도 조용히 나이테를 늘렸으리라 올 봄 유난히 빨리 벙근 꽃망울 함께 떠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몸소 ..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8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제7회 노작문학수상작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오늘도 거기 앉아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 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5
어느 악사의 0번째 기타줄 / 함기석 어느 악사의 0번째 기타줄 / 함기석 흉부가 기타로 변한 여자가 어둠 속에서 늙은 몸을 조율하고 있다 심장을 지나는 여섯 개의 팽팽한 핏줄들 눈을 감고 첫 번째 줄을 끊는다 금세 깨질 것만 같은 울림통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핏물이 저음으로 흐른다 기억은 동맥으로 망각은 정맥을 타고 심장 아래..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5
서랍속의 기다림 / 김정미 제9회 동서커피 문학상 수필 수상작 <은상> 서랍속의 기다림 / 김정미 크고 작은 서랍 속은 우리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수런거리는 공간이기도하다. 그 서랍 속엔 꽁꽁 입구를 봉해놓은 삶의 씨앗봉투, 미처 볶지 못한 연한 베이지색의 커피,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지 못한 작은 공, 다리가 부러진.. 文學의 오솔길/수필방 2008.11.04
토란잎 / 송찬호 토란잎 / 송찬호 나는, 또르르르……물방울이 굴러가 모이는 토란잎 한가운데, 물방울 마을에 산다 마을 뒤로는 달팽이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이 있고 마을 동남쪽 해뜨는 곳 토란잎 끝에 청개구리 청소년수련원의 번지점프 도약대가 있다 토란잎은 비바람에 뒤집혀진 우산을 닮았다 그래..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3
참새 / 윤오영 참새 / 윤오영 짹짹 짹, 짹 짹. 뭇 참새의 조잘대는 소리, 반가운 소리다. 벌써 아침나절인가. 오늘도 맑고 고운 아침. 울타리에 햇발이 들어 따스하고 명랑한 하루를 예고해 주는 귀여운 것들의 조달대는 소리다. 기지개를 펴고 눈을 비빈다. 캄캄한 밤이 아닌가.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고 책상 위의 시.. 文學의 오솔길/수필방 2008.11.03
나는 휘파람의 어미예요 / 김경선 나는 휘파람의 어미예요 / 김경선 현기증과 손잡고 몇 바퀴를 돌고 돌았는지 몰라요 아직도 리허설 중이죠 지쳐 쓰러질듯 휘파람을 불지요 드문드문 관중을 향한 휘파람이 쓸쓸해요 자꾸 휘파람도 따라 울어요 끝도 없는 허방에 커다란 입을 오므리고 무대 밑 낯선 말들은 쫑긋거리는 물고기 떼 같아..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2
위험한 숲 / 김영식 위험한 숲 / 김영식 푸르르, 풋풋 산모룽일 돌아 나오는 거친 말굽소리가 눈두덩을 잡아당긴다 청미래덤불 지나 느릅나무 그늘 지나 푸른 갈기 휘날리며 헐레벌떡 숨을 턱에 달고 뛰어오는 여자 편자처럼 굽은 팔은 연신 허공을 찌르고 두 개의 봉우릴 거침없이 출렁이며 달려오는 저 야생의, 사나운 ..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2
덫 / 박이화 덫 / 박이화 자고 일어나니 정원 한 구석에 새의 깃털이 비명처럼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아마도 살찐 비둘기 한 마리 도둑고양이의 기습을 받았을 터이다 밥이 덫이 되는 현장에서 날개는 더 이상 날개가 되어주지 못한 채 도리어 적의 커다란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미루어 보아 새는 한움큼의 깃털을 ..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1
뼈아픈 후회 / 황지우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 文學의 오솔길/시창고 200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