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 왕국 정연홍 차창 밖으로 코르크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빨간 하초가 드러날 때까지 사람들이 껍질을 벗긴다 놀란 눈의 나무들 유리창 너머 나를 보고 있다 리스본의 골목길에 파두 가락이 뒹군다 길을 묻는 내게 소년이 이스쿠두를 보여 준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포르투갈의 후손들이라니 지금은 코르크 마개를 만들며 생을 보내고 있다니 붉게 짓이겨진 상처도 언젠간 다시 아문다 새살이 돋고 딱지도 떨어져 나가겠지만 기억이 아물 때쯤 사람들이 다시 낫을 들고 올 것이다 이베리아반도에 해가 지고 닻을 내린 선원들이 왁자지껄 골목으로 들어선다 낯선 거리에 서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망설인다 작은 창이 있는 카페에서 이국적인 여인을 만날 상상을 한다 뒷골목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선다 내일은 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