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늦깎이

폴래폴래 2020. 7. 20. 18:33

  늦깎이

 

 

                         전영관

 

 

 어디에 앉혀놔도 등신이었지만

 시라는 거울 앞에 서면

 척추가 휘어진다

 

 초대장도 없이 잔치 구경 간 실업자같이

 기웃거리는 습성을 대인 관계라 착각했다

 

 사람을 넓혀야 한다고 욕심부리다가

 기념사진의 병풍 노릇까지 해봤다

 

 감기 걸렸다고 이불이나 탓하는 얼뜨기여서

 타인의 재능을 노력으로 메우려 헛발질했다

 

 비굴은 치욕을 성형한 생필품

 

 재촉하는 이 없는데 결승선 같은 것 없는데

 지각한다는느낌에 시달렸다

 

 알았던 노래의 2절처럼

 모임마다 가벼운 낯설음으로 채워졌다

 

 웃더라도 타인들이 내 행복을 시기하지 못하도록

 최초의 미소를 만들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웃음소리를 내보고 싶다

 

 등신이라며 자책했다

 또다른 등신들을 보는 눈이 생겨서 안도했다

 타인의 불행을 과장해서 내 불행을 지우는

 비법도 알게 되었다

 

 거듭하다 보면 슬픔도 태도가 된다

 

 

 시집<슬픔도 태도가 된다> 2020 6월

 

 

 

 충남 청양 출생. 2011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바람의 전입신고>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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