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북아현동 스크린 #3

폴래폴래 2020. 7. 10. 16:35

북아현동 스크린 #3

     ─  북아현동 산 1번

                                      손정순

 

 

 기억의 시간 가로지른 빗장에 대못을 꽝꽝 박으면

 싸움 같은 흥정, 큰 고함소리 노을처럼 번지네

 주인 떠난 빈 집마다 날품팔이 술주정꾼들 어슬렁거리고

 미친바람들 웅웅대며

 잃어버린 제 집 번지를 찾고 있네

 

 하늘 아래 감금된 그녀,

 잠시 세든 초여름 햇살에도 푸른 殺氣 느끼네

 은빛 은어떼처럼 고와서

 운명 거슬러 오르는 그대 유혹했다고,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빛과 어둠으로 가득 찬 묵은 페이지 넘기며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대 바라보네

 오래도록 영혼 이쪽저쪽 경계 들썩이다

 한순간, 와르르 허물어지는 광경도 훔쳐보네

 

 세상에서 가장 큰 욕심은 버리는 것이라는데

 버리지도 떠나지도 못한 그녀,

 棺 속에서 한 욕망 껴안고 있네

 반딧불이 같은 외로움,

 한 기다림 끌어안고 있네

 오직 영혼뿐인, 어둠 같은 한 사람을

 

 

 

 <서정시학> 2020 여름호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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