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현동 스크린 #3
─ 북아현동 산 1번
손정순
기억의 시간 가로지른 빗장에 대못을 꽝꽝 박으면
싸움 같은 흥정, 큰 고함소리 노을처럼 번지네
주인 떠난 빈 집마다 날품팔이 술주정꾼들 어슬렁거리고
미친바람들 웅웅대며
잃어버린 제 집 번지를 찾고 있네
하늘 아래 감금된 그녀,
잠시 세든 초여름 햇살에도 푸른 殺氣 느끼네
은빛 은어떼처럼 고와서
운명 거슬러 오르는 그대 유혹했다고,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빛과 어둠으로 가득 찬 묵은 페이지 넘기며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대 바라보네
오래도록 영혼 이쪽저쪽 경계 들썩이다
한순간, 와르르 허물어지는 광경도 훔쳐보네
세상에서 가장 큰 욕심은 버리는 것이라는데
버리지도 떠나지도 못한 그녀,
棺 속에서 한 욕망 껴안고 있네
반딧불이 같은 외로움,
한 기다림 끌어안고 있네
오직 영혼뿐인, 어둠 같은 한 사람을
<서정시학> 2020 여름호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