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의 북쪽
이정원
목련은 북쪽으로 봉오리를 연다
나의 북쪽도 그처럼 간절해
북망은 아직 멀다고 북향을 피해 잠을 청하는데 꿈마저 자꾸 북쪽으로 자란다
길몽과 흉몽 사이 궁극의 모퉁이
북쪽은 순록의 땅
내 머릿속 툰드라에도 순록 떼
밤을 치받는 뿔의 각도가 단호하다
북방 기마민족의 피가 내 혈류를 타고 질주하나 봐
무릎에 피는 서릿발, 발뒤꿈치에 굽이치는 찬 기류, 곱은 손등에 얼음을 가두고도
머리는 자꾸 북으로 기운다
강파른 유목의 땅 찬 별빛
눈 덮인 오미야콘 마을의 감빛 등불을 정수리에 건다
자작나무 우듬지에 핀 설원의 문장을 읽으며
아무르, 아무르, 시베리아 열차에 오른다
바이칼호를 차창에 두르고 서늘한 이마가 지향하는 쪽 길을 잡으면
내 몸속 얼음골 지나 순록의 뿔 치켜든 바람은 끝끝내 북향!
맹목이 펼친 호수의 수위는 잠의 이면에서 드높다
밤새 푹푹 빠지는 몽유의 발목을 거두면 눈발은 하염없이 새벽으로 치닫고
비발디의 겨울이 내 생의 숨찬 악장을 쩡쩡 가르고 있다
시집<몽유의 북쪽> 파란 2022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02년 불교신문, 2005년 <시작> 등단
시집<내 영혼 21그램> <꽃의 복화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