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몽유의 북쪽

폴래폴래 2022. 7. 24. 10:15

몽유의 북쪽

 

                이정원

 

 

 목련은 북쪽으로 봉오리를 연다

 

 나의 북쪽도 그처럼 간절해

 북망은 아직 멀다고 북향을 피해 잠을 청하는데 꿈마저 자꾸 북쪽으로 자란다

 

 길몽과 흉몽 사이 궁극의 모퉁이

 북쪽은 순록의 땅

 

 내 머릿속 툰드라에도 순록 떼

 밤을 치받는 뿔의 각도가 단호하다

 

 북방 기마민족의 피가 내 혈류를 타고 질주하나 봐

 무릎에 피는 서릿발, 발뒤꿈치에 굽이치는 찬 기류, 곱은 손등에 얼음을 가두고도

 머리는 자꾸 북으로 기운다

 

 강파른 유목의 땅 찬 별빛

 눈 덮인 오미야콘 마을의 감빛 등불을 정수리에 건다

 

 자작나무 우듬지에 핀 설원의 문장을 읽으며

 아무르, 아무르, 시베리아 열차에 오른다

 

 바이칼호를 차창에 두르고 서늘한 이마가 지향하는 쪽 길을 잡으면

 

 내 몸속 얼음골 지나 순록의 뿔 치켜든 바람은 끝끝내 북향!

 

 맹목이 펼친 호수의 수위는 잠의 이면에서 드높다

 

 밤새 푹푹 빠지는 몽유의 발목을 거두면 눈발은 하염없이 새벽으로 치닫고

 

 비발디의 겨울이 내 생의 숨찬 악장을 쩡쩡 가르고 있다

 

 

 시집<몽유의 북쪽> 파란 2022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02년 불교신문, 2005년 <시작> 등단

 시집<내 영혼 21그램> <꽃의 복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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