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성북동 비둘기

폴래폴래 2022. 6. 12. 14:00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시집 <성북동 비둘기> 시인생각 2017년 2쇄

 

 

 호 이산, 함경북도 경성 출생.(1905~1977)

 중동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잡지 <문학>과<자유문학> 간행.

 198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이산문학상> 제정. 시집 <동경><마음>

 <해바라기><성북동 비둘기><반응>. 김광섭시전집, 시선집<겨울날> 등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서울시문화상 수상. 국민훈장모란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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