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바닥이라는 말

폴래폴래 2022. 8. 24. 10:47

 

제3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바닥이라는 말

 

                    이현승

 

 우리들의 인내심이 끝난 곳.

 

 사는 게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은 하늘을 본다.

 별 볼 일도 없는 삶이라서

 별이라도 보는 일이 은전처럼 베풀어지는 거겠지만

 

 사람이란

 후회의 편에서 만들어지고

 기도의 편에서 완성된다고 할까.

 

 부드럽게 호소해도 악착스러움이 느껴지는,

 그 많은 간구의 눈빛과 목소리를

 신은 어떻게 다 감당하고 있는 걸까.

 콩나물처럼 자라 올라오는 기도들 중에서

 제 소원은요 다른 사람 소원 다 들어주고 나서 들어주세요.

 하는 물러 빠진 소원도 없지는 안겠지만.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선 곳

 

 그러니까 풍문과 추문을 지나

 포기와 기도를 지나

 

 개양귀비 뺨을 어르며 불어오는 바람이

 가까운 진흙탕 위로 내려앉는 것을 본다.

 

 아무리 맑은 우물이라도

 바닥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므로 함부로 휘젓지 말 것.

 

 

「대답이고 부탁인 말」2021,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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