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골목 / 강은교

폴래폴래 2011. 10. 24. 00:07

 

 

 

 

 

 골목

  ─ 너를 부른다

 

                                       - 강은교

 

 

 

 너를 부른다

 저녁마다 어둠가에 멈춰 서서 너를 부른다

 어둠이 올 때면 지붕들은 더 파리해지지

 창문들은 달달 떨며 가슴을 닫기우고

 천장에 달린 알전구들이 알몸을 빛내기 시작할 때

 

 너를 부른다

 어디선가 걸어오는 자정과 자정 사이에서

 자정과 자정 사이 끓는 찌개 사이에서

 하루치의 여행을 끝낸 신발들, 얌전히 양말을 벗고

 마루 밑에서 마루를 그립게 쳐다보고 있을 때

 

 자물쇠들은 철컥철컥 가슴의 문을 닫고

 혼자 남은 별, 문밖에서 잠기는 자물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

 

 너를 부른다

 끓는 호박과 호박 사이, 부글부글 감자와 감자 사이

 손가락 살짝 데이며 그리 그립게 기다리는 것들아,

 사랑받으려 하지 말라, 사랑하라

 내 잠들러 가면 거기까지 따라와 곁에 눕는 갈 곳 없는 그림자 하나

 그동안 나는 너무 사랑받으려 하였다, 사랑하지 않았다

 

 너를 부르고 부른다, 아직 열려 있는 천지간 문앞에서

 

 

 

 

 시집『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서정시학 2011년

 

 

      시인의 말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011년 가을 강은교

 

 

 

  - 1945년 함남 흥원 출생. 연세대 영문과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년 <사상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허무집><풀잎><빈자일기><소리집><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등

    시산문집, 에세이, 번역서, 시동화 외 다수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재 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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