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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부른다
- 강은교
너를 부른다
저녁마다 어둠가에 멈춰 서서 너를 부른다
어둠이 올 때면 지붕들은 더 파리해지지
창문들은 달달 떨며 가슴을 닫기우고
천장에 달린 알전구들이 알몸을 빛내기 시작할 때
너를 부른다
어디선가 걸어오는 자정과 자정 사이에서
자정과 자정 사이 끓는 찌개 사이에서
하루치의 여행을 끝낸 신발들, 얌전히 양말을 벗고
마루 밑에서 마루를 그립게 쳐다보고 있을 때
자물쇠들은 철컥철컥 가슴의 문을 닫고
혼자 남은 별, 문밖에서 잠기는 자물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
너를 부른다
끓는 호박과 호박 사이, 부글부글 감자와 감자 사이
손가락 살짝 데이며 그리 그립게 기다리는 것들아,
사랑받으려 하지 말라, 사랑하라
내 잠들러 가면 거기까지 따라와 곁에 눕는 갈 곳 없는 그림자 하나
그동안 나는 너무 사랑받으려 하였다, 사랑하지 않았다
너를 부르고 부른다, 아직 열려 있는 천지간 문앞에서
시집『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서정시학 2011년
시인의 말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011년 가을 강은교
- 1945년 함남 흥원 출생. 연세대 영문과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년 <사상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허무집><풀잎><빈자일기><소리집><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등
시산문집, 에세이, 번역서, 시동화 외 다수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재 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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