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메밀꽃이 인다는 말 / 조용미

폴래폴래 2011. 10. 28. 11:47

 

 

 

 

 

 

 메밀꽃이 인다는 말

 

                                             - 조용미

 

 

 

 

 메밀꽃이 인다는 말 아는지요

 바닷가 사람들의 오랜 말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어부들은 메밀꽃이라 부릅니다

 흰 거품을 일으키는 물보라를 메밀꽃이 인다 하는데

 그 꽃은 피는 게 아니라 이는 거예요

 피는 꽃이 스러지는 꽃을 알 수 있을까요 지는 꽃이

일어나는 꽃을 숨 쉴 수 있을까요

 

 먼 파도에서 일어나는 물거품을 나도 이 순간부터

메밀꽃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잠에서 일어나고 연기가 일어나는,

 먼지가 일어나고 두통이 일어나는,

 아지랑이가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나는,

 산불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는,

 불꽃이 일어나고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일어나고 일어나 스러지고 또 스러져 다시 일어나는

 그 꽃을 당신은 벌써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은 어떤가요

 메밀꽃처럼 흰 거품을 일으키며 솟구쳤다 스러지고

또 스러지는 이 마음 참 오래되었지요

 메밀꽃이 또 인다고 당신께 소식 전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메밀꽃이 피고 졌다 말할 밖에요

 북쪽으로, 매서운 메밀꽃이 이는 한겨울의 바다로

가만히 당신을 보러갑니다

 

 

 

 

 시집『기억의 행성』문지 2011년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등

    김달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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