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이 인다는 말
- 조용미
메밀꽃이 인다는 말 아는지요
바닷가 사람들의 오랜 말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어부들은 메밀꽃이라 부릅니다
흰 거품을 일으키는 물보라를 메밀꽃이 인다 하는데
그 꽃은 피는 게 아니라 이는 거예요
피는 꽃이 스러지는 꽃을 알 수 있을까요 지는 꽃이
일어나는 꽃을 숨 쉴 수 있을까요
먼 파도에서 일어나는 물거품을 나도 이 순간부터
메밀꽃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잠에서 일어나고 연기가 일어나는,
먼지가 일어나고 두통이 일어나는,
아지랑이가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나는,
산불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는,
불꽃이 일어나고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일어나고 일어나 스러지고 또 스러져 다시 일어나는
그 꽃을 당신은 벌써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은 어떤가요
메밀꽃처럼 흰 거품을 일으키며 솟구쳤다 스러지고
또 스러지는 이 마음 참 오래되었지요
메밀꽃이 또 인다고 당신께 소식 전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메밀꽃이 피고 졌다 말할 밖에요
북쪽으로, 매서운 메밀꽃이 이는 한겨울의 바다로
가만히 당신을 보러갑니다
시집『기억의 행성』문지 2011년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등
김달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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