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새날 / 이병률

폴래폴래 2011. 10. 19. 15:14

 

 

 사진:여행작가 김남희님

 

 

 

 새날

 

                    이병률

 

 

 

 가끔은 생각이 나서

 가끔 그 말이 듣고도 싶다

 

 어려서 아프거나

 어려서 담장 바깥의 일들로 데이기라도 한 날이면

 들었던 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누이들이기도 했다

 누운 채로 생각이 스며 자꾸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들킨 밤에도

 얼른 자, 얼른 자

 

 그 바람에 더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좁은 별들이 내 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얼른 자, 얼른 자

 

 그 밤, 가끔은 호수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터져 펄럭이던 살들을 꿰맨 것인지

 금이 갈 것처럼 팽팽한 하늘이기도 하였다

 

 섬광이거나 무릇 근심이거나

 떨어지면 받칠 접시를 옆에 두고

 지금은 헛되이 눕기도 한다

 새 한 마리처럼 새 한 마리처럼 이런 환청이 내려 앉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개벽을 할 거야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더 잠들 수 없는 밤

 조금 울기 위해 잠시만 전깃불을 끄기도 한다

 

 

 

 

 시집『찬란』문지 2010년

 

 

 

 

 -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

   현대시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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