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암각화 / 길상호

폴래폴래 2011. 10. 17. 15:42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암각화

 

                                 - 길상호

 

 

 

 소주 한 잔 같이 기울이자고

 바위 속 남자를 불러냈어요

 옷걸이에 활과 화살집을 걸어놓고

 앉는데 그의 발목 복사뼈에서

 돌조각이 몇 개 떨어지네요

 마지막 사냥 늑대에게 물린 자국이라며

 딱딱한 입술로 술잔 비우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요, 오히려

 사슴들 내달리는 푸른 초원과

 물고기 가득한 강이 옆에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대요

 그것보다 나의 가슴에서 지워진

 암각화 사연이 더 궁금하다고,

 어젯밤 눌러 꺼버린 별에 대하여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어서

 나는 또 쓰디쓴 술을 넘겨요

 금이 가기 시작한 눈동자에

 미지근한 소주가 한 방울 맺혀요

 날이 밝자 그는 그림 속으로 돌아가고

 술에 취한 나만 혼자 남아서

 부스러진 가슴을 긁어내고 있어요

 

 

 

 

 『시와정신』2011년 가을호

 

 

 

 

 -충남 논산 출생. 200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눈의 심장을 받았네>

  현대시동인상, 천상병시상, 질마재 해오름상,김달진젊은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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