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암각화
- 길상호
소주 한 잔 같이 기울이자고
바위 속 남자를 불러냈어요
옷걸이에 활과 화살집을 걸어놓고
앉는데 그의 발목 복사뼈에서
돌조각이 몇 개 떨어지네요
마지막 사냥 늑대에게 물린 자국이라며
딱딱한 입술로 술잔 비우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요, 오히려
사슴들 내달리는 푸른 초원과
물고기 가득한 강이 옆에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대요
그것보다 나의 가슴에서 지워진
암각화 사연이 더 궁금하다고,
어젯밤 눌러 꺼버린 별에 대하여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어서
나는 또 쓰디쓴 술을 넘겨요
금이 가기 시작한 눈동자에
미지근한 소주가 한 방울 맺혀요
날이 밝자 그는 그림 속으로 돌아가고
술에 취한 나만 혼자 남아서
부스러진 가슴을 긁어내고 있어요
『시와정신』2011년 가을호
-충남 논산 출생. 200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눈의 심장을 받았네>
현대시동인상, 천상병시상, 질마재 해오름상,김달진젊은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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