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참외향기
- 박철
늙은신 어머니가 깍아온 참외 한 접시
늙으신 어머니 참외 한쪽 들어 내미네
맑은 속살 흰 눈섭 받아들고 머뭇거리자
늙으신 어머니 어서 먹으라 말하네
늙어신 어머니 이제 잊었나
아주 오래전 더위가 뼛속까지 번지던 날
장맛비로 쓸고 간 인간사 이후
나 참외를 먹지 못하네
그때 그랫지
논길을 걸어 들길을 걸어
가다 가다 쉬던 곳 땡볕 속의 푸른 참외밭
이별을 앞둔 두 사람
낮은 원두막에 앉아 참외옷을 벗겼지
더위를 끌고 코끝에 번지던 참외향
사랑은 훗날 달콤한 향기로 남고
나는 더 이상 참외를 먹지 못하네
오늘도 다시 풋풋하게 살아오는 사람
며느리 삼으면 좋겠다던 그 여자를
늙어신 어머니는 벌써 잊어신 모양이네
어서 한점 들어봐라
늙어신 어머니 고운 손으로
그 여자 잊으라 참외 한쪽 코끝에 디미네
언제가 내 가슴속을 떠나는 날
어머니도 늙고 나도 늙고 그 여자도 늙어
세상은 달콤한 참외향만 남겠네
『창작과비평』2009년 봄호
- 19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창비』등단.
시집<영진설비 돈 갖다주기>외 다수.
『시힘』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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