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굴참나무 술병
- 손택수
와인을 처음 마실 때 코르크 마개를 딸지 몰라 애를 먹은 일이 있다
촌놈 주제에 아내 앞에서 분위기 좀 잡으려다 식은땀을 흘린,
그때 뽑다 만 코르크 마개가 저 굴참나무다
얼마나 단단히 박아놓았는지 지난밤 태풍도 끙끙 힘만 쓰다 지나갔다
뽑혀나가지 않으려 땅을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버틴 나무들
살짝 들려 있는 뿌리를 따라 땅거죽도 얼마쯤 불쑥 잡아당겨져 있다
펑 따면 꽉 틀어막은 구멍 너머로 몇 백년 묵은 술 향기 같은 것이 올라올 것 같은데
우르릉 쾅쾅 천둥 번개 치는 시간을 대지는 향그러운 알코올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
온 들판이 버티는 나무뿌리의 술병이 되게 했던 것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나도 한 방울의 술이 되어 녹는 날이 올 테니
그때는 굴참나무 쪼록쪼록 술 익는 소리에 취해 천년을 더 기다려도 좋을 터
뿌리에 매달려 떠오를 듯 들썩이던 길과 잡아당기다 만 저 산봉우리와
엉덩이를 들었다 놓은 바위들이 이제 나의 벗이다
월간『현대시』2009년 6월호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신동엽창작상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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