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그녀, 요나
- 김혜순
어쩌면 좋아요
고래 뱃속에서 아기를 낳고야 말았어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는데
사랑을 하고야 말았어요
어쩌면 좋아요
당신은 나를 아직 다 그리지도 못했는데
그림 속의 내가 두 눈을 달지도 못했는데
그림 속의 여자가 울부짖어요
저 멀고 깊은 바다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그 여자가 울어요 그 여자의 아기도 덩달아 울어요
두 눈을 뜨고 당신을 보지도 못했는데 눈물이 먼저 나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게 분명하지요?
그러니 자꾸만 자꾸만 당신이 보고 싶지요)
오늘 밤 그 여자가
한 번도 제 몸으로 햇빛을 반사해본 적 없는 그 여자가
덤불 같은 스케치를 뒤집어쓰고
젖은 머리칼 흔드나 봐요
이파리 하나 없는 숲이 덩달아 울고
어디선가 보고 싶다 보도 싶다 함박눈이 메아리쳐와요
아아, 어쩌면 좋아요?
나는 아직 태어나보지도 못했는데
나는 아직 얼굴이 다 빚어지지도 못했는데
시집『한 잔의 붉은 거울』2004 문지.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건국대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 [문학과지성]등단.
<김수영문학상><현대시 작품상> 등 수상.
현재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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