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구멍 / 최서림

폴래폴래 2009. 6. 7. 12:32

 

 

 

 

                                                    사진:네이버포토 

 

 

 

              구멍

 

                                    - 최서림

 

 

 

 나는 원래 구멍 안에서 만들어졌다.

 껌껌하고 긴 구멍 안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불씨를 이어받았다.

 聖火 봉송하는 릴레이 선수처럼.

 아늑하게 조여주는 긴 터널을 뚫고 나와 드디어

 거친 빛의 세계로 나왔다. 태초의 명령에 따라.

 빛을 받아먹고 내 안의 불씨는

 바람 센 땅의 삼나무모냥 자라 올랐다. 이글이글.

 언젠가 나는 또 하나의 구멍으로 돌아가리라.

 나의 불은 그 안에서 소멸되리라. 충직하게.

 신화와 소문의 산실, 비밀스런 구멍은

 내 몸이 드나드는 집이고

 불이 제 길을 틀어 가는 통로이다.

 나는 구멍으로 너를 사랑해 왔다. 정직하게.

 사랑은 불이다. 참말로

 나의 불은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 구멍, 땀구멍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빚어진 구멍을 통해

 네 안의 핵발전소로 흘러들어간다. 법칙보다 더 고집스럽게.

 불과 불이 얽혀서 핵처럼 터지는 사랑.

 구멍 안에서 탄생하는 또 하나의 불씨 알.

 또 하나의 눈물 방울.

 

 

 

          『구멍』2006 세계사

 

 

 

 

                  -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국문과 同 대학원 박사.

                     1993년『현대시』등단.

                     시집<이서국으로 들어가다><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비평서<말의 혀>

                       현재 서울산업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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