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껍질의 힘 / 이정록
닭똥집에 소주를 먹는다 집 한 채가 왜 이리 쉽게 무너질까 똥집의 내장 벽지를 뜯어냈기 때문이다 유리로 만든 집에서 질긴 썬팅막을 걷어낸 격이다 내가 독한 소주를 견딜 수 있는 것도 내 똥집 속의 내장 벽지 때문이다 욕지거리를 참아내는 내 심장 속 가죽 부대도 질긴 막으로 묶여 있다
겁질을 깎아낸 감자는 독이 오르지 않는다
씨눈이 떠났기 때문이다 껍질은 오히려 나를 살리는 씨눈의 곳간, 껍질을 벗긴 갈대는 마디를 꺾는다
철면피에 녹 방지용 웃음도 피우고 살아가는 것이다 소주잔을 털어 넣고 집으로 향한다 저 질긴 내장 벽지 안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씨눈을 흘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감자를 썰어 넣은 된장국이 졸았든지 식었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통에 처박힌 감자의 독오른 눈초리가 초침을 뽑아들고 있을 것이다 내 온몸의 씨눈들이 문을 열고 눈치를 살핀다
당신이 독이 오르는 이유도 다 씨눈이 싱싱하기 때문이다
-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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