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씨앗 / 이승희

폴래폴래 2009. 5. 8. 22:31

 

 

 

 

 

 

               씨앗    / 이승희 

 

 

 

 1

 

 꽃이 피거나

 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

 본성이 아닌거야

 검은 흙 속을

 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온 시간들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가

 풀려지는 일이야

 

 감자꽃이 피는 것은

 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

 땅 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

 

 2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봐, 저 들판, 저 강가, 네가 발 딛고 선 이 땅 속 어디에든 바람이 숨겨 둔 풀씨들이 발꼬락을 움직여 무엇으로 일어서려 하는지. 한때 그것들은 서로 다른 날개의 길이로, 그 불균형으로 바람을 타고 올랐을 것이고, 혹은 가능한 멀리로 자신을 뱉아내는 그 모든 세상에서 밀려나 아주 쓸쓸한 저녁을 맞았을지도 모르지. 잘 보면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분명히 보일거야, 바로 네가 발 딛고 선 그 자리일지도 몰라. 네가 가둔 것들, 네가 끝끝네 손에 쥔 그것들을 한번쯤 놓아봐.

 

 

 

 

                 -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88년 서울예전 문창과 졸.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저녁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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