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 이승희
1
꽃이 피거나
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
본성이 아닌거야
검은 흙 속을
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온 시간들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가
풀려지는 일이야
감자꽃이 피는 것은
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
땅 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
2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봐, 저 들판, 저 강가, 네가 발 딛고 선 이 땅 속 어디에든 바람이 숨겨 둔 풀씨들이 발꼬락을 움직여 무엇으로 일어서려 하는지. 한때 그것들은 서로 다른 날개의 길이로, 그 불균형으로 바람을 타고 올랐을 것이고, 혹은 가능한 멀리로 자신을 뱉아내는 그 모든 세상에서 밀려나 아주 쓸쓸한 저녁을 맞았을지도 모르지. 잘 보면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분명히 보일거야, 바로 네가 발 딛고 선 그 자리일지도 몰라. 네가 가둔 것들, 네가 끝끝네 손에 쥔 그것들을 한번쯤 놓아봐.
-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88년 서울예전 문창과 졸.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저녁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껍질의 힘 / 이정록 (0) | 2009.05.16 |
|---|---|
| 비상구 / 손유미 (0) | 2009.05.16 |
| 오월 / 위선환 (0) | 2009.05.08 |
| 멸치 / 김경미 (0) | 2009.05.07 |
| 물방울 목탁 / 천수호 (0) | 2009.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