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독거 / 안도현

폴래폴래 2009. 4. 19. 09:55

 

 

 

                                                        사진:네이버포토 

 

 

 

          독거         / 안도현

 

 

  나는 능선을 타고 앉은 저 구름의 독거(獨居)를 사랑하련다

 

  염소떼처럼 풀 뜯는 시늉을 하는 것과 흰 수염을 길렀다는 것이 구름의 흠이긴 하지만,

 

  잠시 전투기를 과자처럼 깨물어다가 뱉으며, 너무 딱딱하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썩 좋아하고

 

  그가 저수지의 빈 술잔을 채워주는 데 인색하지 않은 것도 좋아한다, 떠나고 싶을 때 능선의 옆구리를 발로 툭 차버리고 떠나는 것도 좋아한다

 

  이 세상의 방명록에 이름 석 자 적는 것을 한사코 싫어하는,

 

  무엇보다 위로 치솟지 아니하며 옆으로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대통령도 수도승도 아니어서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저 구름,

 

  보아라, 백로 한 마리가 천천히 허공이 될 때까지 허공이 더 천천히 저녁 어스름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바라보기만 하는

 

  저 구름은, 바라보는 일이 직업이다

 

  혼자 울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밤을 새보지도 못하고 혼자 죽어보지도 못한 나는 그래서 끝끝내,

 

  저 구름의 독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 국문과 단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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