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천수관음에게 손을 주다 우는 / 김선우
비 그친 후 세상은 쓰러진 것들의 냄새 가득해요
간밤 바람 소리 솎으며 내 날개를 빗기던 이 누구?
큰 파도 닥칠까 봐 뜬눈으로 내 옆을 지킨 언덕 있었
죠 날이 밝자 언덕은 우렁 각시처럼 사라졌죠, 아니
죠, 쓰러졌죠
쓰러진 것들의 냄새 가득해요 비 그친 후 세상은
하루의 반성은 덧없고 속죄의 포즈 세련되지만
찰기가 사라졌어요 그러니 안녕, 나는 반성하지 않
고 갈 거예요 뾰족한 것들 위에서 악착같이 손 내밀
래요 접붙이듯 날개를 납작 내려놓을래요
수 세기의 겨울이 쌓여 이룬 가을 봄 여름이에요
비 그친 후 쓰러진 것들의 냄새 가득한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
이 빛으로 감옥을 짤래요 쓰러진 당신 위에 은빛
감옥을 덮을래요
나는 울어줄 손이 없으니
당신의 감옥으로 이감 가듯 온몸의 감옥을 접붙일
래요
- 1970년 강릉 출생. 1996년 창비 겨울호 등단.
현대문학상 수상, '시힘'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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