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달팽이 / 김사인

폴래폴래 2009. 4. 16. 11:11

 

 

 

                                                 사진:네이버포토

 

 

         달팽이   /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 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 할 그 누구조차 사라지고

 길은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 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 현대문학 2008년 2월호

 

 

 

               - 1955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고대 대학원.

                  1982년 동인지 시와경제 창간동인으로 등단.

                  동덕여대 문창과 교수.

                  시집<밤에 쓰는 편지><가만히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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