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낡은 집 / 이용악

폴래폴래 2009. 4. 15. 13:01

 

 

                                                        사진:네이버포토

 

 

 

           낡은 집     /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튼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 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 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1914년 함북 경성 출생. 1934년 동경 상지대학 유학.

                     1935년 신인문학 3월호에 '패배자의 소원' 등단.

                     시집<분수령><낡은 집><오랑캐꽃><이용악집>

                     1988년 이용악시전집, 창비.

                     1950년 6,25동란중 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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