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모과불(佛) / 고영민

폴래폴래 2009. 4. 13. 20:56

 

 

 

 

 

 

 

             모과불(佛)       / 고영민 

 

 

 

 설풋한 모과 하나를 주워다가

 책상에 올려놓았다

 저 흉중에도 들고나는 것이 있어

 색이 돋고 향기가 난다

 둥근 테두리에 들어 있는

 한켠 공중(空中)

 가끔 코를 대고

 흠, 들이마시다보면

 어릴 적 맡은 어머니 겨드랑이 냄새가 났다

 

 모과의 얼굴 한쪽이 조금씩 썩기 시작했다

 모과 속에 들어 있던 긴 시간

 한여름의

 그늘냄새, 매미소리

 

 내 방 허공중에

 매일 하루치의 제 것을 조금씩 꺼내 피워두던

 모과 하나가

 말끔히 한몸을 태워

 검은 등신불로 앉아 있다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 부르기 / 마종기  (0) 2009.04.15
날아라 풍선 / 마경덕  (0) 2009.04.14
누에 / 나희덕  (0) 2009.04.10
영실營實 / 김신용  (0) 2009.04.08
치자꽃 설화 / 박규리  (0) 200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