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치자꽃 설화 / 박규리

폴래폴래 2009. 4. 7. 23:49

 

 

 

 

 

 

           치자꽃 설화          /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첫시집<이 환장할 봄날에 >2004년 창비.

 

 

          - 1960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수료.

             1995년 민족예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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