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경(明鏡) / 이상
여기 한 페이지 거울이 있으니
잊은 계절(季節)에서는
얹은 머리가 폭포처럼 내리우고
울어도 젖지 않고
맞대고 웃어도 휘지 않고
장미처럼 착착 접힌
귀
들여다보아도 들여다보아도
조용한 세상이 맑기만 하고
코로는 피로한 향기가 오지 않는다.
만적만적하는 대로 수심(愁心)이 평행(平行)하는
부러 그러는 것 같은 거절(拒絶)
우(右)편으로 옮겨앉은 심장(心臟)일망정 고동이
없으란 법 없으니
설마 그러랴? 어디 촉진(觸診)······하고 손이 갈 때 지문(指紋)이 지문을 가로막으며
선뜩하는 차단 뿐이다.
五월이면 하루 한 번이고
열 번이고 외출하고 싶어하더니
나갔던 길에 안 돌아오는 수도 있는 법
거울이 책장 같으면 한 장 넘겨서
맞섰던 계절을 만나련만
여기 있는 한 페이지
거울은 페이지의 그냥 표지(表紙)─
一九三六, 五, 女性. 발표
- 1910년 서울 출생. 1930년 경성고등공업 건축과 졸업.
1937년 28세로 요절 했다.
작품:<오감도><날개><종생기><실화>등 단편,시,수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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