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천마총 놀이터 / 박준

폴래폴래 2009. 4. 1. 14:31

 

 

 

                                       사진출처:네이버포토갤러리

 

 

 

         천마총 놀이터        / 박준 

 

 

 

  심야택시 미터기에서 뛰는 말아, 불안감 조성은 경범죄처벌법 제 24호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동네 입구서부터 내려 걷는 날이 많다 시유지 놀이터엔 비가 내린다 가로등 그늘은 빈 그네를 쉽게 밀 줄을 알고 나는 오래된 말들을 곧잘 불러 탄다

 

  그때, 수학여행에 못 가고 벤치에서 몸을 김밥처럼 말아 넣는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첨성대를 돌아 천마총으로 향하고 있었을 겁니다 뒷산에서부터 저녁이 자꾸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놀이, 혀가 마른 입술을 아리게 만나는 놀이, 시소가 떠난 무게를 기억하는 간단한 놀이, 누가 부르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는 놀이들을 모래에 섞어 신발에 넣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면 '경주는 많이 갂다와봐서, 바다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어' 라고 신발을 털며 말하고 싶었지만

 

  놀이를 놀이이게 하고 겨울을 겨울이게 하는 놀이터에 봄이 와도 너는 오지 않았으니 나는 풀어놓은 아픈 말들을 한데 몰아 노트에 적는 놀이를 시작했네 흙이 흙을 낳고 말이 새 말을 하는 놀이, 그 말을 자작나무 껍질에 옮겨 적지 않아도 되는 놀이, 흙에 종이를 묻는 놀이

 

  고분古墳처럼 뚱뚱한 동네 엄마들이 깨어날 시간입니다 납으로 봉인된 택시 미터기의 말들은 지금도 달리고 있을까요 저는 아직 제방으로도 못 가고 천마총에도 못 가보았지만 이게 꼭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라서요, 결국 무엇을 묻어둔다는 것은 시차時差를 만드는 일이었고 시차는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는 혼자가 스스로의 눈동자를 아프게 기다리는 일이었으니까요

 

 

 

 

        - 신작 시

 

 

 

                    - 1983년 서울 출생.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창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재학. 2008년 실천문학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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