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바닥이 난다 / 박시하

폴래폴래 2009. 3. 31. 13:57

 

 

 

 

 

 

 

            바닥이 난다    / 박시하 

 

 

 비둘기 날개 한 쌍이 바닥에 깔려 있어

 몸은 잃고 상징만 남았네

 썩지도 않고 누가 훔쳐가지도 않을 평화가

 바닥을 치고 있어

 

 하늘을 날던 몸짓은 타이어에 으깨져서 더욱 가벼워

 뒷골목 찌꺼기 먼지 속에서 자라난 깃털

 바닥에 자꾸 새겨지고 있어

 스릴이 없다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지

 날아본 적 없는 아스팔트 위로

 날개의 기억이 촘촘히 스캔되고 있어

 구구구, 울면서

 

 저렇게 너덜너덜한 비상의 무늬가

 혹시 나에게도 있을까?

 추락하던 내 날갯죽지가 문득 간지러워

 구구구,

 내일이 돋아나고 있는 걸까?

 날개들은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어서

 비상할 수도 있는 거, 맞지?

 바닥을 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거잖아

 

 근데, 저 선명한 날갯짓은

 얼마나 더 오래 추락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낮은 곳으로 깔리는 땅거미 구름

 구름을 끌고 내려온 그림자

 그림자 한구석에 박혔던 돌멩이들과 함께

 구구구,

 바닥이 떠오르고 있어

 

 

 

 

 

         암모나이트    / 박시하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원래 하나였으므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분열은 달콤했다

 수없는 우리가 사라지고 나타났다

 어제와 오늘은 내일이 되고

 내일은 어제가 되었다

 

 시작은 끝이 되었다

 해당화 붉은 겹꽃잎 질 때마다

 바람이 눕는 지도가 새로 생기듯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이만큼을 낡아왔다

 

 화석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발굴되지 않는 부패와 부패되지 않는 비밀과

 나로 분열되고 있는 너, 침묵으로

 부어오른 근육들 꿈틀대는

 단식투쟁하는 죽은 이들의 발가락

 

 멸망을 알리는 천사의 나팔소리와

 허공을 향하는 준비, 땅! 하는 소리

 시간의 틈새마다 식지 않은 촛농을 붓고

 창백해지는 별 그림자에 이십억 년을 이글거린

 태양의 부스러기를 뿌린다

 

 바다로부터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굽은 너의 어깨에 나의 손을 올리고

 너의 끝에 나의 시작을 맞댄다, 우리는

 한 시절 열렬히 몸 부비다 가는

 낡고 둥그런 흔적이다

 

 

 

 

 

             - 서울 출생. 이화여대 생활미술과 졸업.

                2008년 '작가세계'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