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꽃눈이 번져 / 고영민

폴래폴래 2009. 3. 25. 08:48

 

 

 

 

 

 

 

 

            꽃눈이 번져     / 고영민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이 시간, 눈 빠알갛게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눈 부비고 일어나 차분히 옷 챙겨입고

 나도 잠깐, 어제의 그대에게 멀리 다니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

 다녀올 동안의 설렘으로 잠 못 이루고

 소식을 가져올 나를 위해

 돌을 괸 채

 뭉툭한 내가 나를 한없이 기다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순간, 비 쏟아지는 소리

 깜박 잠이 들 때면

 밤은 더 어둡고 깊어져

 당신이 그제야

 무른 나를 순순히 놓아줬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도 지극한 잠 속에 고여 자박자박 숨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에게 다니러 간 내가

 사뭇 간소하게 한 소식을 들고 와

 눈 씻고 가만히 몸을 누이는

 이 어두워

 환한 밤에는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 2009.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