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이 번져 / 고영민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이 시간, 눈 빠알갛게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눈 부비고 일어나 차분히 옷 챙겨입고
나도 잠깐, 어제의 그대에게 멀리 다니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
다녀올 동안의 설렘으로 잠 못 이루고
소식을 가져올 나를 위해
돌을 괸 채
뭉툭한 내가 나를 한없이 기다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순간, 비 쏟아지는 소리
깜박 잠이 들 때면
밤은 더 어둡고 깊어져
당신이 그제야
무른 나를 순순히 놓아줬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도 지극한 잠 속에 고여 자박자박 숨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에게 다니러 간 내가
사뭇 간소하게 한 소식을 들고 와
눈 씻고 가만히 몸을 누이는
이 어두워
환한 밤에는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 2009.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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