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상수리나무 스승 / 복효근

폴래폴래 2009. 3. 23. 20:44

 

 

 

 

 

 

 

            상수리나무 스승   / 복효근 

 

 

 이 마을 숲엔 몇 십 년 묵은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모여 산다

 하나같이 허리께에 커다란 웅덩이 같은 상처가 있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 떡메를 지고 와서

 나무둥치를 쳐 울려 상수리를 땃기 때문이다

 나무를 쳐댈 때마다

 나무는 굵은 눈물 같은 상수리를 한 소쿠리씩

 쏟아 냈을 것이다

 벗겨진 제 상처를 안으로 오그리며

 나무는 하늘로 더 멀리 가지를 뻗었을 것인데

 그 가지 끝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썩어가는 둥치 속으론

 버섯이 자라고

 청개구리가 기어들고

 또 풍뎅이가 알을 깐다

 내가 다가갈 때마다

 나무는 무슨 이야기 같은 것 혹은 노래 같은 것을

 이것들의 입으로 날갯짓으로 들려주곤 하는데

 내 살아갈 길을 넌지시 들려주는 것도 같은데

 한 계절도 아니고

 한 해로도 끝나지 않아서

 아예 이 숲에 살림을 차려서 모시고도 싶다

 

 

 

           -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 등단.

                마늘촛불, 애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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