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호 박 / 함민복

폴래폴래 2009. 3. 31. 16:04

 

 

 

 

 

 

 

             호 박           / 함민복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바라다보면

 방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했네

 최선을 다해 딴딴해진 호박

 속 가득 차 있을 씨앗

 가족사진 한 장 찍어 본 적 없어

 호박네 마을 벌소리 붕붕

 후드득 빗소리 들려

 품으로 호박을 꼬옥 안아 본 밤

 호박은 방안 가득 넝쿨을 뻗고

 코끼리 귀만한 잎사귀 꺼끌꺼끌

 호박 한 덩이 속에 든 호박들

 그새 한 마을 이루더니

 

 봄이라고 호박이 썩네

 흰곰팡이 피우며

 최선을 다해 물컹물컹 썩어 들어가네

 비도 내려 흙내 그리워 못 견디겠다고

 썩는 내로 먼저 문을 열고 걸어나가네

 자, 出世다

 

 

 

 

 

               - 1962년 충북 중원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