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능소화 / 강영은 다시보기

폴래폴래 2009. 3. 17. 12:32

 

 

 

 

                  능소화  

                                                                   강영은

 

   엄마가 내 푸른 담요를 걷었을 때

   나는 꽃이 될 거라는 예감을 가졌어요.

   꽃이 나에게 노크를 했거든요.

 

   엄마가 내 몸 속에

   얼마나 많은 꽃씨를 숨겨 놓으셨는지

   보세요, 저리도 많은 발가락과 손가락을

   마구 뻗어난 길들을

 

   늙은 소나무의 축 늘어진 그것이든

   버드나무 휘어진 허리춤이든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

   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잖아요?

 

   폭염에 술 취한 딸처럼

   주홍빛 얼굴을

   울컥울컥 게우고 있잖아요?

 

   그게 나라구요, 나였다구요

 

   그러니 엄마, 습한 문 열고 나 장마 지게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툭, 툭,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두세요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 문인수  (0) 2009.03.19
저린 사랑 / 정끝별  (0) 2009.03.18
봄 / 이성부  (0) 2009.03.17
이별 후의 이별 1 / 장석원  (0) 2009.03.16
고양이 죽이기 / 김기택  (0) 200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