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죽이기 / 김기택
그림자처럼 검고 발걸음 소리 없는 물체 하나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다
급히 차를 잡아당겼지만
속도는 강제로 브레이크를 밀고 나아갔다.
차는 작은 돌멩이 하나 밟는 것만큼도 덜컹거리지 않았으나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타이어에 스며든 것 같았다.
얼른 싸이드미러를 보니 도로 한가운데에
털목도리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야생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호랑이나 사자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라
잇몸처럼 부드러운 타이어라는 걸 알 리 없는 어린 고양이였다.
승차감 좋은 승용차 타이어의 완충장치는
물컹거리는 뭉개짐을 표나지 않게 삼켜버린 것이다.
씹지 않아도 혀에서 살살 녹는다는
어느 소문난 고깃집의 생갈비처럼 부드러운 육질의 느낌이
잠깐 타이어를 통해 내 몸으로 올라왔다.
부드럽게 터진 죽음을 뚫고
그 느낌은 내 몸 구석구석을 햝으며
쫄깃쫄깃한 맛을 오랫동안 음미하고 있었다.
음각무늬 속에 낀 핏자국으로 입맛을 다시며
타이어는 식욕을 마저 채우려는 듯 속도를 더 내었다
- 1957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이수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수상. <시집> '껌' 2009.창비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봄 / 이성부 (0) | 2009.03.17 |
|---|---|
| 이별 후의 이별 1 / 장석원 (0) | 2009.03.16 |
| "응" / 문정희 (0) | 2009.03.11 |
|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다 / 이승하 (0) | 2009.03.09 |
| 빈집 / 기형도 (0) | 2009.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