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다 / 이승하

폴래폴래 2009. 3. 9. 22:39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다     / 이승하 

 

 

 

 음모를 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풍성했을까

 지금은 듬성듬성 흰색과 갈색도 섞여 있는 음모

 바퀴벌레 같은 희망과 토막 난 지렁이 같은 절망

 기저귀 갈아드리며, 때때로 사타구니 닦아드리며 ······

 내 몸이 언젠가 저 구멍에서 나왔다니

 

 알몸을 본 적이 없었다

 젖가슴 크기를, 유두 색깔을 알 도리 없었다

 염하는 중늙이와 조수인 젊은 친구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 몸을 염포로 싸고 있다

 체중 줄이지 못해 늘 힘겨워했던 당신의 몸

 암세포가 덮친 말년의 고통 말해주듯이

 불룩했던 아랫배가 푹 꺼져 있다 쭈글쭈글하다

 30년 장사일 하는 동안

 체중을 지탱했던 튼실한 두 다리

 젓가락이 되어 있다

 

 염장이 중늙은이야 뭐 대수롭지 않겠지만

 젊은 조수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하체

 내 치부를 드러낸 것보다 더 부끄러워

 입 안 마른 염전이 되고

 시선은 숨을 곳 찾아 자꾸 달아난다

 곶감 같은 저 아랫배

 언젠가는 홍시 같았을까

 어머니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했을까

 "이리 와서 이 배 좀 만져봐요.

 태동이 대단한 걸 보니 사내앤가 봐요."

 

 저 아랫배 그 언젠가

 내 아버지를 달뜨게 했을 것이다

 무덤처럼 솟아올랐을 것이다

 아랫배 속에서 나 한때 웅크리고 있었겠지만

 모레면 배부를 일 다신 없을 세상으로

 어머니 저 몸을 불태워 보내드려야 한다

 

 

 

                                 -시작노트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와서 몇 편의 시를 썼다.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 한 세계를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어머니가 계시던 세상과 어머니 없이 살아갈 세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나는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렸다. 내 인생의 출발 지점이었던 어머

                          니의 아랫배 앞에서 고개 숙여 경배하는 기분으로 이 시를 썼다.

 

 

 

                   -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김천에서 성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96년 중앙대 박사학위.

                     1999년 중앙대 문창과 교수.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 죽이기 / 김기택  (0) 2009.03.14
"응" / 문정희  (0) 2009.03.11
빈집 / 기형도  (0) 2009.03.09
골목길 / 이병초  (0) 2009.03.08
슬픔을 사육하다 /고성만  (0) 200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