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다 / 이승하
음모를 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풍성했을까
지금은 듬성듬성 흰색과 갈색도 섞여 있는 음모
바퀴벌레 같은 희망과 토막 난 지렁이 같은 절망
기저귀 갈아드리며, 때때로 사타구니 닦아드리며 ······
내 몸이 언젠가 저 구멍에서 나왔다니
알몸을 본 적이 없었다
젖가슴 크기를, 유두 색깔을 알 도리 없었다
염하는 중늙이와 조수인 젊은 친구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 몸을 염포로 싸고 있다
체중 줄이지 못해 늘 힘겨워했던 당신의 몸
암세포가 덮친 말년의 고통 말해주듯이
불룩했던 아랫배가 푹 꺼져 있다 쭈글쭈글하다
30년 장사일 하는 동안
체중을 지탱했던 튼실한 두 다리
젓가락이 되어 있다
염장이 중늙은이야 뭐 대수롭지 않겠지만
젊은 조수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하체
내 치부를 드러낸 것보다 더 부끄러워
입 안 마른 염전이 되고
시선은 숨을 곳 찾아 자꾸 달아난다
곶감 같은 저 아랫배
언젠가는 홍시 같았을까
어머니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했을까
"이리 와서 이 배 좀 만져봐요.
태동이 대단한 걸 보니 사내앤가 봐요."
저 아랫배 그 언젠가
내 아버지를 달뜨게 했을 것이다
무덤처럼 솟아올랐을 것이다
아랫배 속에서 나 한때 웅크리고 있었겠지만
모레면 배부를 일 다신 없을 세상으로
어머니 저 몸을 불태워 보내드려야 한다
-시작노트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와서 몇 편의 시를 썼다.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 한 세계를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어머니가 계시던 세상과 어머니 없이 살아갈 세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나는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렸다. 내 인생의 출발 지점이었던 어머
니의 아랫배 앞에서 고개 숙여 경배하는 기분으로 이 시를 썼다.
-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김천에서 성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96년 중앙대 박사학위.
1999년 중앙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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