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 사랑 / 정영선
이른 봄날 물푸레나무 밑에서 나는 편지가 되었지요 땅 가득 떠나지 않는 지난 해의 물푸레나무 잎사귀들이 올해의 물푸레나무 잎사귀들에게 자꾸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군요 그냥 나무 아래 서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요 발 밑에서 버석거리는 소리들을 우편배낭 같은 가슴으로 부쳐 오면 소리들이 잠시 모였다가 제 주소로 찾아가는 푸른 숨결로 타올랐지요 가슴, 어깨, 머리에 푸른 물이 드는 것 같았지요 귀 뒤에서 연두 잎들을 밀어내는 것 같았지요 발이 푹푹 빠지면서 그렇게 하염없이 서 있었지요 그런데 새순들이 입을 벌리고 연신 말을 받아 삼키고 있었지요 벙싯 벌어지고 있었지요 연두 잎들 하나하나가 꽃이었지요 하룻밤 새에 어린잎들이 초록으로 꽃피는 건 지난해의 잎사귀들이 들려주는 혼신의 말 때문이었지요
- 부산 출생. 이대 영문과 졸업.
1995년 '현대시학'등단
시집<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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