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달의 뒤편 / 고경숙

폴래폴래 2009. 2. 18. 15:58

 

 

 

 

 

 

 

 

              달의 뒤편       / 고경숙 

 

 

 

 젖은 빨래를 탁탁 털어널고 들어간 아내에게

 방망이로 흠뻑 두들겨 맞은 날은

 일수도장을 찍은 것처럼 후련하다

 빨랫대가 그나마 중심을 잡아주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접어진 허리며 정강이가

 부러질 뻔 했다 용케도 죽지 않고

 정신을 차려 세상을 보면 불똥처럼

 외곽순환도로 위 차들이 거꾸로 붙어간다

 그맘때쯤

 겨울별도 내 늘어진 팔뚝에서 목 솔기에서

 오색영롱한 빛으로 뜬다

 늘어진 전선들이 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기타 구멍처럼 후미진 이곳에선

 일 다녀온 아내들에게 매일 밤 얻어맞는

 일 없는 남자들이 나처럼 빨래줄에 얹혀져

 궁시렁 궁시렁 달을 한 잔씩 비운다

 옥탑방까지 무단으로 올라온

 빈 은행나무 가지들이

 바람부는 대로 달의 표면을 쓸고 있다

 쓸어갈 것도 쓸려가는 것도 모두 초라한

 달의 뒤편에 기울었던 해는 뜰까

 새벽밥 지으러 아내 쪽문열고 나올 때까지

 양팔뚝에 고드름 차고 뜬 눈으로 밤을 샌다

 쥐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가도록 말이다.

 

 

 

 

               -1961년 서울 출생.

                   2001년 계간 '시현실'신인상 등단.

                   제4회 하나,네띠앙 인터넷 문학상 대상.

                   제2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난시 동인.

                  시집<모텔 캘리포니아><달의 뒤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