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유월의 관능

폴래폴래 2021. 6. 5. 16:41

막스 리버만(사랑현장)

유월의 관능

 

                 유현숙

 

 그랬다 선착장은 멀고

 먼 바다 저편에는 먼 섬이 있다

 신도는 저기

 시도 거쳐 모도까지 섬에서 섬은 저만큼 떨어져 있고

 떨어져 앉은 저만큼 먼 물길 건너서 닿은 섬

 섬은 그랬다

 바람이 붉고 해당화가 적적한 햇볕이 더운 땅에

 좁고 가파른 오르막과

 햇살이 미끄러지는 경사와

 불쑥 내민 모퉁이와

 수상하게 조용한 한나절과

 한가한 거기에

 늘 그렇듯 노르메기*가 있다

 

 그랬다

 가리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깊은 곳에

 물빛 푸른 바다가 고이기도

 여자남자는 겹쳐져 있기도

 슬픈 남자가 슬픈 여자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여자 위에 얹힌 남자의 등허리 위에

 한낮의 태양이 누워 있다

 

 탕 뫼르소**의 총소리가 들리고

 

 바다는 그랬다

 난자와 여자는 그랬다

 외설과 관능과 미학의 상관관계와 대낮의 햇볕과

 더운 대기 사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여자와

 완벽하게 벗은 남자의 사이에서

 바다는 입 다물고

 짙푸르다

 하늘과 바람과 시간과 물빛이 제각각의 체위로 흔들리는

 거기 어디에

 당신 있었던가

 

 길은 바다로 떨어져 내리고 나는 벼랑 끝에서 돌아선다

 유월의 그림자가 길게 일어서는

 섬의 끝

 탕, 뫼르소의 마지막 총소리가 들린다

 

 * 배미꾸미조각공원이 있는 모도의 끝자락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시집 <몹시> 상상인, 2021년 5월

 

 

  2003년 <문학.선> 등단. 시집 <서해와 동침하다><외치의 혀>

 제10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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