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않는 눈
박은지
윗집 아이가 마을을 떠났다
발소리를 두고 떠났어
창밖엔 깃털처럼 눈이 내렸다
모두 꿈이라는 건 일리 있었다
어느 정도는 꿈이라고 믿는 편이 괜찮을지도 모르니까
주인을 잃은 발소리는
시끄럽고도 보드라웠다
무어라 말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마을의 모든 귀를 모아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책을 뒤적이거나 스노우볼을 들여다보며
소리 없는 걸음의 행방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어
한 계절 내내 꿈의 기록을 뒤져도
우리는 소리 없는 걸음의 행방을 짐작할 수 없었다
발소리는 폭설처럼 쏟아지고
아프면서도 차가운 그 발소리를
밤이 전부 지나가도록 받아 적었다
또 다른 발소리가 다가온다
꿈의 기록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온통 하얀 창밖으로 작은 발자국이 무성하다
다시 내리는 눈
시인수첩 2021년 봄호
1985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박사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