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 신발
- 안상학
공중전화 부스에서 딸에게 전화 걸다
문득 갈라진 시멘트 담벼락 틈바구니서 자란
도라지꽃 보았네 남보랏빛이었네
무언가 울컥, 전화를 끊었네
딸아
네 아버지의 아버지도
환하지만 아주 환하지는 않은 저 남보랏빛 꽃처럼
땅 한 평, 집 한 칸 없이 저리 살다 가셨지
지금 나도 저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환하지만 아주 환하지는 않은 얼굴로
아주 좁지만 꽉 찬 신발에 발을 묻고 걸어가고 있겠지
도라지의 저 거대한 시멘트 신발 같은 걸 이끌고
네 아버지의 아버지처럼
환한 딸아 지금 내가 네 발밑을 걱정하듯
네 아버지의 아버지도 내 발밑을 걱정하셨겠지
필시, 지금 막 도라지꽃 한 망울 터지려 하고 있다
환하지만 다 환하지만은 않은 보랏빛 딸아
내가 사 준 신발을 신은 딸아
시집『아배 생각』애지 2008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그대 무사한가><안동소주><오래된 엽서><아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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