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꽃 나비 떼
- 이월춘
이름이 참 예뻤다 자운영꽃
하양과 연분홍의 꽃잎이 들판 가득
춘삼월의 배고픔을 퍼뜨릴 때
보릿고개 넘어가던 동네 사람들 어깨마다
아지랑이처럼 노란 해가 내려앉아 있었다.
끝이 안 보이던 강둑길 따라
읍내 닷새장 가는 사람들이 서툰 풍경을 만드는 시간
도랑이나 덤붕가에 모여든 아이들은
말밤이며 꼬꾸랑에 올비를 따 허기를 달래고
덜 여문 감자 끄댕이를 헤집거나
동네 당산나무 크고 넓은 가난 아래로 모여들면
마을은 고요의 이름을 달고 그냥 엎드려 있었다.
무엇 하나 이룰 수 없는 것이 없었고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그 높은 봄날 하늘 아래
진정 이름이 예쁜 자운영꽃 무리졌는데
맨발에 눈이 크고 검은 아이들 머리 위로
온갖 나비 떼 훨훨 날고 있었다
시집『산과 물의 발자국』문학의전당 2009
- 1957년 경남 창원 출생. 경남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졸업.
1986년 무크<지평>으로 등단. 시집<칠판지우개를 들고>
<동짓달 미나리><추억의 본질><그늘의 힘>외 다수
김달진문학상 지역문학상 수상. 진해중앙고교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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