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피리 / 유미애

폴래폴래 2011. 1. 10. 11:39

 

 

사진:네이버포토

 

 

 

 피리

 

                     - 유미애

 

 

 

 나는

 나무의 눈동자를 찢고 나온 새요

 피 묻히며 새가 건너가는 하늘, 바람의 긴 숨

 가쁜 숨으로 빠져나온 바다의 눈썹 끝

 연둣빛 상처를 드러내며 우는 달이요

 

 죽은 사람이 벗어놓고 간 비단 버선

 복숭아 자루를 끌고 가던 보름 밤

 한 떼의 나비를 날려 보낸 썩은 복숭아 조각이요

 

 초록의 물렁뼈가 닳은 나무의 무릎

 빈 무릎 아래서 색을 나누던 구렁이

 류화주*한 잔을 먹고 잠든 구렁이 속의 얼굴이요

 

 산비탈, 바다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집

 엉겅퀴 밭을 헤치며 콩을 줍던, 허리가 휜 램프요

 한 생애 동안

 황토밭에 눈물을 뿌려 온 늙은 암소요

 

 나는

 혀 짧은 뱀, 눈썹이 문드러진 소

 몸 바꾸어 돌아가던 풀집 모퉁이

 그리운 봄날을 향해 가는

 털이 무성한 맨발이요

 

 

  * 신선들이 마신다는 술.

 

 

 

  시집『손톱』문학세계사 2010

 

 

 

 

 

 - 경북 문경 출생.

    2004년 시인세계 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