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피리
- 유미애
나는
나무의 눈동자를 찢고 나온 새요
피 묻히며 새가 건너가는 하늘, 바람의 긴 숨
가쁜 숨으로 빠져나온 바다의 눈썹 끝
연둣빛 상처를 드러내며 우는 달이요
죽은 사람이 벗어놓고 간 비단 버선
복숭아 자루를 끌고 가던 보름 밤
한 떼의 나비를 날려 보낸 썩은 복숭아 조각이요
초록의 물렁뼈가 닳은 나무의 무릎
빈 무릎 아래서 색을 나누던 구렁이
류화주*한 잔을 먹고 잠든 구렁이 속의 얼굴이요
산비탈, 바다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집
엉겅퀴 밭을 헤치며 콩을 줍던, 허리가 휜 램프요
한 생애 동안
황토밭에 눈물을 뿌려 온 늙은 암소요
나는
혀 짧은 뱀, 눈썹이 문드러진 소
몸 바꾸어 돌아가던 풀집 모퉁이
그리운 봄날을 향해 가는
털이 무성한 맨발이요
* 신선들이 마신다는 술.
시집『손톱』문학세계사 2010
- 경북 문경 출생.
2004년 시인세계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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