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손가락이 뜨겁다
- 채호기
하늘의 별은 뜨겁다. 밤은 차갑다. 벌거벗은 네 등은 차갑다. 내 손은 뜨겁다. 비가 오고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수증기. 내 손가락들이 수증기에 갇힌다. 물렁물렁해진 진흙에 발이 빠지듯 네 등을 산책하는 손가락들이 빠져든다. 네 등에 손톱 끝으로 고랑을 내며 글씨를 쓴다. 씨앗을 뿌린다.
흙이 글자를 끌어당긴다. 네 등에 묻힌 글자에서 싹이 돋고, 들꽃들이 피어났다. 밤은 뜨겁다. 꽃은 뜨겁다. 꽃의 향기는 시가 되어 손가락 끝에 만져진다. 네 등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영원히 새겨졌다. 별은 뜨겁다. 손가락도 뜨겁다.
시집『손가락이 뜨겁다』2009.문지
시인의 말
힘든 시간들…… 기댈 수 없는
말들로 이루어진 시에 기댔다.
골똘하게 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타인의
낯선 눈으로 사라진 나를 바라보는
말들이 있었다.
2009년 6월
채호기
- 1957년 대구 출생. 대전대 국문과 졸업.
1988년『창작과비평』등단.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교수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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