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한 손
-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시집『공손한 손』2009.창비
시인의 말
4년 만에 두번째 시집을 엮는다.
원고를 묶는 동안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울음소리가 큰 여식을 하나 더 얻었다.
고향집은 빈집이 되었다.
언젠가 정약용 선생의「죽란시사첩」을 본 적이 있다.
매화가 피면 한번 모이고,
참외가 익으면 한번 모이고,
바람이 서늘한 가을이면 연꽃을 보러 서지에 모이고,
큰 눈이 오면 한번 모이고.
매화가 피고,
참외가 익고,
연꽃이 피고,
눈이 와도 이젠 모일 수 없는 것들이 내겐 있다.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네겐 있다
그래도 나는 만나러 가야 한다.
혼자라도 만나 한나절 떠들고 실컷 울고 웃다 와야 한다.
매화가 피었기에,
참외가 익었기에,
서지에 연꽃이 피고 큰 눈이 왔기에.
2009년 1월
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업.
2002년『문학사상』신인상 당선.
시집<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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