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오동나무 / 송찬호

폴래폴래 2009. 6. 17. 19:49

 

 

                                             사진:네이버포토

 

 

          오동나무

 

                                               - 송찬호

 

 

 나는 아직도 오동나무를 찾아가던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어떤 푸른 그늘이 필요했다

 하여 찾아간 오동나무와의 인사는 아름드리 그 나무 허리를 한번 안아보았던 것

 

 근처에서는 딸기나무 관리인인 검은 염소가

 청동의 고삐를 잃어버린 것일까

 온통 딸기나무 밭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말했다 나무 위쪽에 빠끔한 하늘을

 그냥 흑판으로 쓰는 작은 산비둘기 학교가 있고 발아래

 뿌리가 뻗어나간 곳까지 일궈놓은 이십여 평의 그늘이 그의 삶의 전부라고

 

 그 말을 들어서일까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먹는

 오동나무 막국수가 얼마나 맛있던지

 오동나무 따님이 내온 냉차는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때 계절은 참으로 치열하였다

 염소의 두 뿔과 붉은 딸기가 얼마나 범벅이었는지

 냇가에서는 돌과 잉어의 배가 얼마나 딴딴해졌는지

 

 떠날 때 오동나무는 잎을 따 주었다

 몇 번 사양을 했지만 푸른 날들을 잊지 말라며

 내 주머니 속에 기어이 오동 잎 몇 장 꾸깃꾸깃 넣어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언덕 위 그 오동나무 그늘을 기억하고 있다

 다리 건너 입구의 오동나무 편지통, 현관 앞 오 분 늦게 가는 오래된 오동나무 괘종시계, 진흙이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던 오동나무 구두, 부엌에서 들리던 오동나무 도마 소리……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과

                    1987년『우리 시대의 문학』등단.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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