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의 둘레 / 김행숙
이 작은 화분 한 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꽃을? 꽃과 잎을? 꽃과 잎과 벌레를? 나는 화분의 세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플러그를 뽑듯이 나는 화초를 뽑아 던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물이 끓지 않고, 이제부터 조용해져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전화선을 자르듯 너의 줄기를 자르고, 이전과 이후가 각각인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나는 가장 가난한 삶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라고 생각했습니다.
발자국이 없고, 물이 없고, 짹짹짹 새소리가 없고, 엄마가 없고 엄마가 없는, 엄마 없이 떠 있는 별의 지표면에서. 한 명의 아기도 울지 않는 별에서 살아가는 어떤 삶, 열렬하고 고독하고 게으른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장 넓은 화분의 둘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몇 개를 내내 만지작거렸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내일도, 라고 생각했습니다.
- 한국일보 '별, 시를 만나다' 2009년 5월 발표.
-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同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 '현대문학'에 <뿔>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 현재 고려대와 상명대 출강.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0) | 2009.05.26 |
|---|---|
| 청동정원 / 최영미 (0) | 2009.05.25 |
| 좋고나머지 / 황정숙 (0) | 2009.05.23 |
| 장미 / 조은길 (0) | 2009.05.23 |
| 덩굴은 고집이 세다 / 마경덕 (0) | 2009.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