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청동정원 / 최영미

폴래폴래 2009. 5. 25. 11:54

 

 

 

 

 

 

              청동정원        / 최영미 

 

 

 

 청동으로 빚은 나무가 못에 걸려 있네.

 휘어진 가지에 사이좋게 마주 앉은

 작은 새 한 쌍, 위에 매달린 종을

 건드리면 청아한 울림이 떨어지지

 

 그 밑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먼지가 이끼처럼 내려앉은 계절을 보내고

 푸르던 잎이 퇴락한 왕조의 구릿빛으로 변하는데

 나 말고는 지나간 사람이 없네

 

 배반의 노래가 거실에 쌓이던

 어느 날 나는 알았네

 울리지 않는 종을 ……

 수상한 그림자만 얼씬거리는

 녹슨 청동정원에서

 새와 단둘이 오래 살았네

 

 문이 만 번쯤 열리고 닫히고

 연애시를 백 편쯤 만드는 동안

 누군가 천천히 지나가며

 방울을 쓰다듬는 사람이 없어,

 

 천둥처럼 울리기를 기다리며

 단단히 문을 걸어잠그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누워 있네 차가운 바닥에

 두 마리 새들이 하나로 겹쳐져,

 새도 나무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

 

 

 

 

                   - 문학동네 2009년 봄호.

 

 

 

              -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 '창작과 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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