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살강*에서 / 이금미

폴래폴래 2009. 5. 20. 23:07

 

 

 

 

 

 

 

 

             살강*에서      / 이금미 

 

 

 

  이 곳에서는 아무도

  눈물의 깊이를 재려 하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호수의 속눈썹

  잔주름에 늙어가는 그 눈자위를

  가는 빗속에서 쓸쓸하게 들여다보거나

  실밥 하나 없이 풀리는 안개의 흐릿한 상처를

  마른기침 쿨럭이며 바라보는 일뿐

 

  이 세상 눈물들이 사는 집을 보았다

  맷돌로도 눌러지지 않은 그리움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둑방길 걸으면

  데칼코마니처럼 접혔다가 펴지는

  호수의 푸른 실핏줄들이여

  삶이 한 번 접혔다 힘들게 펴지며

  흐느끼는 울음 우울하게 번져가는 살강

 

  낡은 탁자 위 시집 살피 속

  압화처럼 눌러진 숨 막히는 그리움들이

  투박한 커피잔 속 설탕으로 녹아들 때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살강에서

  내 외로움들은 도자기처럼 몸을 웅크리며

  곱게 빚어져 가고 있었지

 

  그리워하기엔 너무 늦은 살강엔

  잊혀지기에 더욱 늦은 비가 내리고

  나는 호숫가 옆 빛바랜 의자에 앉아

  몇 방울 쉼표로 출렁거리던 물살들이

  하나씩 켜지는 살강의 등불에

  서글프게 눈뜨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지

 

 

 

           * 살강 : 경남 함양군 지곡면 덕암마을 뒤 덕암저수지 옆에 위치한 찻집 이름.

            * 살강의 뜻 : 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 벽에 드린 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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