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의미 / 전봉건
장미는 나에게도
피었느냐고 당신의 편지가 왔을 때
5월에 …… 나는 보았다.
탄흔에 이슬이 아롱 지었다.
그리고 태양은 빛나고
흙은 헤치었다.
무수한 자국
무수한 군화 자국을 헤치며 흙은
녹색을 새 수목과 꽃과 새들의 녹색을 키우고
그 가장자리엔 흰 구름이 비꼈다.
구름이 …….
그러나
구름에서는
다시 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함포사격 울부짖는 대만해엽에 자욱한
군화 자국 그 소리
폭격 맞은 알지에의 모래밭을 뭉개는
군화 자국 그 소리
불타는 베트남의 밀림을 누비는
군화 자국 그 소리
1955년.
그러나
나는 믿었다.
대만해협의 군화 자국도
알지에의 군화 자국도
베트남의 군화 자국도 헤쳐져
철조망 155마일에 낭자했던 군화 자국처럼
그렇게 깡그리 헤쳐져
헤쳐진 그 모든 자리 반짝이며 일어서는
녹색의 차지가 될 것임을.
살점 핏방울 떨치며 죽음 떨치며
일어서며 반짝이는 녹색의 차지가 될 것임을.
그러기에
이 5월에
이슬 아롱지는 탄흔에도 그림자 떨구고 비낀
저 흰 구름 언저리에 마침내 나는 당신을 보았다.
따뜻함과 빛무늬로 떨리는 당신의 기도를
푸른 하늘도 보듬고 푸른 바다도 보듬어
넉넉하게 둥근 당신의 가슴을
그 가슴 흰 부드러움 한가운데 나부끼는 녹색을
녹색의 깃발을.
1955년 5월에
장미는 나에게도
피었느냐고 당신의 편지가 왔을 때
5월에 …… 나는
아름다웠다.
- 전봉건(1928년~1988년)
평남 안주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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