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장미의 의미 / 전봉건

폴래폴래 2009. 5. 18. 10:33

 

 

 

 

 

 

 

            장미의 의미    / 전봉건 

 

 

 

 장미는 나에게도

 피었느냐고 당신의 편지가 왔을 때

 5월에 …… 나는 보았다.

 탄흔에 이슬이 아롱 지었다.

 

 그리고 태양은 빛나고

 흙은 헤치었다.

 

 무수한 자국

 무수한 군화 자국을 헤치며 흙은

 녹색을 새 수목과 꽃과 새들의 녹색을 키우고

 그 가장자리엔 흰 구름이 비꼈다.

 구름이 …….

 

 그러나

 구름에서는

 다시 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함포사격 울부짖는 대만해엽에 자욱한

 군화 자국 그 소리

 폭격 맞은 알지에의 모래밭을 뭉개는

 군화 자국 그 소리

 불타는 베트남의 밀림을 누비는

 군화 자국 그 소리

 1955년.

 

 그러나

 나는 믿었다.

 대만해협의 군화 자국도

 알지에의 군화 자국도

 베트남의 군화 자국도 헤쳐져

 철조망 155마일에 낭자했던 군화 자국처럼

 그렇게 깡그리 헤쳐져

 헤쳐진 그 모든 자리 반짝이며 일어서는

 녹색의 차지가 될 것임을.

 살점 핏방울 떨치며 죽음 떨치며

 일어서며 반짝이는 녹색의 차지가 될 것임을.

 

 그러기에

 이 5월에

 이슬 아롱지는 탄흔에도 그림자 떨구고 비낀

 저 흰 구름 언저리에 마침내 나는 당신을 보았다.

 따뜻함과 빛무늬로 떨리는 당신의 기도를

 푸른 하늘도 보듬고 푸른 바다도 보듬어

 넉넉하게 둥근 당신의 가슴을

 그 가슴 흰 부드러움 한가운데 나부끼는 녹색을

 녹색의 깃발을.

 

 1955년 5월에

 

 장미는 나에게도

 피었느냐고 당신의 편지가 왔을 때

 5월에 …… 나는

 아름다웠다.

 

 

 

 

            - 전봉건(1928년~1988년)

                 평남 안주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