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눈물은 힘이 세다 / 고영

폴래폴래 2009. 5. 16. 18:38

 

 

 

                                               사진 : 네이버포토 갤러리 

 

 

 

          눈물은 힘이 세다     / 고영

 

 

 

 아내가 잔다

 아내의 눈물이 잔다

 밤새 울부짖던 눈물이 지쳐 쓰러져 잔다

 아내의 눈물이 깰까봐

 나는 없는 자존심마저 다 내어준 채

 베란다 딸린 차가운 변방으로 밀려나 놀란 가슴 쓸어내린다

 눈물은 아내가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다

 눈물의 포효는 점점 위력을 더해간다

 

 눈물은 힘이 세다

 눈물은 맹독의 발톱을 가졌다

 야차 같은 저 눈물의 횡포를 겪고 나면

 남는 건 싸늘한 폐허뿐이다, 내겐 폐허만 남았다!

 폐허를 건너는 밤이 너무 길다

 무장해제 당한 밤은 너무 무섭다

 

 언제부턴가

 아내의 눈물에 발톱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말수가 줄어든다

 쌀을 씻는 일도 잦아졌다

 눈물의 포효가 커질수록, 횡포가 극에 달할수록

 나는 점점 눈물에게 복종되어 간다

 

 눈물 앞에선 모든 게 내 탓이다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야 산다!

 

 

 

 

 

       고라니          / 고영

 

 

 

 마음이 술렁거리는 밤이었다

 수수깡이 울고 있었다

 문득, 몹쓸 짓처럼 사람이 그리워졌다

 모가지 길게 빼고

 설레발로 산을 내려간다

 도처에 깔린 달빛 망사를 피해

 오감만으로 지뢰밭 지난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네 개의 발이여

 방심하지 마라

 눈앞에 있는 올가미를 깨운다

 먼 하늘 위에서 숨통을 조여 오는

 그믐달 눈꼴

 언제나 몸에 달고 살던 위험이여

 누군가 분명 지척에 있다

 문득 몹쓸 짓처럼 한 사람이 그리워졌다

 수수깡이 울고 있었다

 

 

 

           시집<너라는 벼락을 맞았다>2009.문학세계사

 

 

 

 

            - 1966년 안양출생, 부산에서 성장.

               2003년 현대시 등단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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