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사랑의 근거 / 김경미

폴래폴래 2009. 5. 15. 07:29

 

 

 

 

 

 

               사랑의 근거      /  김경미 

 

 

 

 그해 여름,

 꽃무늬 비닐장판 같은 게 인생에 마구 쏟아져들어왔다

 밤 열두시 십분의 택시기사는 차를 마시자며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 만날 확률이 7만 5천 분의

 1,이라고

 어디 근거인지 모르겠으나,

 

 75만 분의 1인 사랑도 매일 그냥

 스쳐간답니다

 (정육점 빛깔의 6월 장미들 면장갑 낀 손으로 매일 가슴 부위를

손질하고 나도 더러 누군가를 손질하지만 통증의 근거 또한 아직

알 수 없답니다)

 

 태양과 나와 장미와 택시와 면장갑 들이

 매일 서로 다른 확률의 근거를 호소하던 날들

 달팽이무늬의 낙엽들 몇번쯤 지나면 비닐꽃무늬도

 잦아들겠으나

 택시가 또다른 여자에게 건넬 확률은 99퍼쎈트

 어떤 여자가 그에 응할 확률은

 

 모르겠으되,

 

 7천 5백만 분의 1로 마주쳐도

 스치고 마는 눈빛도 있답니다

 (우리가 만난 건 어쩌면 0퍼쎈트의 확률 덕분!)

 어디에도 무엇에도 아직 아무 근거도

 모른다 합니다 늘 지독한 비닐꽃무늬의 여름들이라 합니다

 

 

 

 

 

              - 1959년 경기 부천 출생. 한양대 사학과 졸업.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쉿, 나의 세컨드는>

                       <고통을 달래는 순서> 2005년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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