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강물이 흐르는 너의 곁에서 / 전봉건
2월은 오고 3월은 오고
무너진 다리에도 4월은 오고
강물은 흐르고 그리고 그것은 나의 눈시울에
따뜻한 그것은 눈물이었다.
잃어진 것은 없었다.
불탄
나뭇가지마다 찌든 전사자의
아직도 검은 외마디 소리들을 발려내기 위하여
수액은 푸른 상승을 시작하고
155마일의 철조망이 에워싼 무인지대에서도
하늘은 푸르고 새들은 노래하고
꽃들은 한들거렸다.
잃어진 것은 없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자리에서도
잃어진 것은 없었다.
맑은 물빛 푸름 한 점
아주 작은 별 한 점
그렇다 아무것도
잃어진 것은 없었다.
강물은 흐르고
무너진 다리에도
강물은 흐르고 흐르면서
개미보다 더 큰 사탕을 물고 간 개미에 대한 이야기 꽃그늘에서 꿀벌을 위해 숨죽인 속삭임과 그러나 요란스럽게 꽃가지를 흔들면서 날개 친 두 마리 새에 대한 이야기 줄지은 창문들이 마치 무슨 악보와도 같은 거리에 대한 이야기 열매 맺는 한 나무의 성장과 성숙 그 순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크나큰 고마움 가슴 벅찬 입맞춤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
오직 그런 이야기만을
쉴 새 없이 쉴 새 없이 하였다.
잃어진 것은 없었다.
부러진 총검도
구멍 뚫린 철모도
반쯤 묻혀서 녹스는 들판
소리 없이 부드럽게 휩쓰는 무수한 풀들의 손길
그 푸른 손길은 눈물겨웁다.
피얼룩 깁고 누빈 저고리 벗고
피얼룩 깁고 누빈 긴 치마 벗으면
목덜미에 가슴에 젖꼭지에도
허리에도 무릎에도 풀들 푸른 손길 휩쓸어
그 손길 가지가지 푸른 무늬
어지럽게 눈부시게 아롱지는 너.
오 너는 진정 눈물겨웁다.
잃어진 것은 없었다.
언제든
그렇다 언제든
나를 눈 떠 보게 하고
나를 노래하게 하고
나를 사랑하게 하고
나를 눈물짓게 하면서
나를 아름답게 하는 아무것도
잃어진 것은 없었다.
2월은 오고 3월은 오고
무너진 다리에도 4월은 오고
강물은 흐르고 그리고 그것은 나의 눈시울에
따뜻한 그것은 눈물이었다.
전봉건(1928 - 1988)
- 1928년 평남 안주 출생. 1946년 월남.
1950년 '문예' 등단.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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